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성인ADHD 진단 나의 파란만장한 스토리 시작.

by sanmani 2022. 11. 30.

ADHD인걸 모르고 자책하며 지냈던 날들.

1. 내가 ADHD를 자각하게 된 에피소드

어릴 때부터 덜렁이였다.

준비물 놓고다니고

지갑 잃어버리고

우산은 가지고 나가면 99%의 확률로 잃어버리고 돌아왔다.

 

그냥 태어나길 덜렁이로 태어났고

그게 내 성격인 줄 알았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까먹는 게 있길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살았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는데

나는 왜인지 항상 수저통을 잊어버리고 학교엘 갔다.

어쩔 수 없이 친한 친구에게 수저를 항상 빌렸는데

처음엔 흔쾌히 빌려주던 친구도 내가 빌리는 빈도가 늘어가자 점점 짜증을 냈다.

 

그럼 그 친구가 급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저를 받아서 씻어서 먹곤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빠른 진단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중고등학교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였다.

엄청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알면서 실수하는 게 많았음) 반에서는 주로 3등 안에 들었고

꽤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어서 학창 시절에 나에게 어떤 발달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았다.

굳이 말하자면,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성적이 잘 안 오르네. 정도?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나는 점점 살기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회사에서의 사소한 실수

지각

필터링이 되지 않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하나하나가

나의 회사 안에서의 평판을 만들어 갔다.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기 일쑤였고

몇몇 직장을 제외하고는 

길게 가지 못했다.

 

 

2. ADHD인지 모르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

그러다 서른 즈음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났다.

 

ADHD인인 나에게 있어 육아란..

정말 괴롭고 괴로운 일의 연속이었다.

나같은 인간은 원시시대처럼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하고 전투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서 애랑 지지고 볶으려니 죽을 것만 같았다.

 

ADHD의 특징이기도 한...

루틴 작업을 지겨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힘들어하는 내 성향은

지극히 루틴스럽고 반복작업의 연속인 육아가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정말 내가 지금까지 해 본 어떤 일보다도 힘든게 육아였다.

그 당시에 일본인 남편은 매일같이 바빴다.

새벽같이 출근했고 저녁 늦게 귀가했다.

나는 말도 안통하는 아이와 좁은 2DK의 아파트에서

하루종일 하염없이 남편이 귀가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결국 우울증과 번아웃이 왔다.

 

 

엄마가 온전히 육아를 해야하는 0-3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던 시기였다.

 

3. ADHD가 낳은 또 다른 ADHD

 

태어난 아들은 날 닮아 평범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많고 자주 다치고..

편식이 심했고 아토피도 심해 깊이 잠을 못 잤다.

정서적으로 예민했고 감각도 예민했다.

만 1세가 되기 전까진 2시간에 한번씩 깨며 엄마를 괴롭혔다.

 

남자아이들은 으레 많이 움직이고 뛰어다니고 다친다고 하지만

척 봐도 엄마인 나에겐 보통 아이와는 다른 점이 보였다.

혹여나 안고 있다가 땅에 내려놓을라 치면 내려놓기가 무섭게 뛰어다녔고

내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항상 아이를 쫒아다니고, 없어지면 찾으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아이 손을 씻기려고 세면대 앞에 안아 세우면 

손 씻는 데는 관심이 없고 세면대에 놓인 각종 물건들(핸드워시, 칫솔, 브러시 등등)에 손을 뻗어댔다.

 

결국 만 3세 검진 때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소견서를 받았다.

그리고 청소년만 전문으로 보는 대학병원을 소개받아 발달검사를 했고

ADHD 경향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직 어려서 확실한 진단이 어려워 경향이 보인다는 정도의 소견을 받았다.)

그동안 의심만 해 왔을 뿐 선뜻 병원에 발을 옮기지 못했던 나도 용기를 내어 병원문턱을 밟았고

가까운 정신의학과에서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ADHD진단을 받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는 사람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는 오히려 안도하는 기분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괴로웠고 힘들었던 기억들의 이유가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ADHD의 병명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그렇다 장애다.

나는 이날 진단과 함께 자유함을 얻었다.

 

 

4. ADHD와 함께하는 일상

이게 병인지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모자란 게 ADHD 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싶지도,

또 두려워서 꼭꼭 숨어있고 싶지도 않다.

 

ADHD와 동행하면서 발버둥 치면서

또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내 아들도 잘 키우기 위한 분투기를

오늘부터 블로그에 써 내려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