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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그 혼돈의 인생

by sanmani 2024. 11. 19.

어디에도 털어놓은 적 없는 나의 이야기.

 

내가 ADHD를 진단 받았을 당시,

내 삶의 상태는 마치 추운 겨울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3살 아들의 발달장애를 발견했고,

꾸역꾸역 욕심내서 하던 쓰리잡은 무엇하나 손에 잡히질 않았으며

우울감이 극심했고 

지병인 편두통은 늘 나를 따라다니며 죽지 못해 살았다.

 

ADHD로 인해 내 일상 조차도 늘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는데

내가 사랑하고 오롯이 내가 돌보아야 하는 작은 아이 또한 ADHD 성향을 보였고

이 아이를 마음 깊이 이해하면서도 양육의 어려움과 에너지의 고갈로 번아웃이 왔다.

 

일본인 남편은 한인교회에서 사례를 받던 교육전도사였다.

늘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그 동안 모든 집안 대소사와 육아는 내 몫이었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전도사 사모라는 틀 안에 꾸역꾸역 나를 구겨 넣고

교회 안에서는 그 누구와도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한 채

왕따처럼 독박육아를 하며 말라 비틀어 져 가고 있었다.

 

ADHD를 가진 전도사 사모라니.

사람 이름도 얼굴도 못 외우고, 대인관계도 삐걱거리며,

말에 필터링도 잘 안되며 성도와의 따뜻한 정서적 교류도 어려워 하는 사모라니.

내 일상을 돌보는 것만 해도 남들의 2-3배의 에너지를 써야 해서

누군가를 돌보지도 못하고 지쳐떨어져 나가 있는 쓰잘데기 없는 사모라니.

 

나의 쓸모없음과 무기력함과 외로움은 천천히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난 내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에 대해서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고 울 수도 없었고 누구에게 털어 놓을 수 조차 없었다.

나는 집안의 가장이었고, 발달장애 아들의 주 양육자였고, 교회에서는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편이 사역을 그만 두고 평신도가 되었다.

그것에 대한 죄책감도 아직 있는데.. 나 때문에 사역을 그만둔건 아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모였다면 우리 남편은 사역을 그만 두었을까...?)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내가 할 수 있을거라 착각한 길이기도 했다.

끝나지 않는 깜깜한 터널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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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이상이 높다고 한다.

나 또한 스스로를 성찰해 봐도

에너지 레벨이 높을 땐 뚫고 나가는 의욕과 상상력으로 활기가 넘치지만

에너지 레벨이 낮을 땐 청소기 돌리기 조차도 손가락 까딱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어떻게 이렇게 의욕 레벨이 바닥을 뚫거나 천장을 뚫는지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그렇다.

 

그래서 에너지 레벨과 의욕이 높은 상태를 늘 동경하고 갈망하고

그렇지 않을때는 우울하고 죄인이고 무기력해 진다.

내가 세운 이상적인 레벨과 현실의 갭이 너무나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ADHD 진단을 받은 그 시절은 길고 긴 터널이었지만,

진단을 받음으로 난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 모든 불안함과 연약함을 포함해서 나라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여야 했다.

 

사실은 지금도 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혐오의 버릇이 나오곤 한다.

나의 이 어딘가 모자란 특성이 너무너무 밉고 싫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아직도 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좋아지고 싶고 더 멋지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질 땐 부정적 회로가 강화되곤 한다.

차라리 죽으면 편하겠다고 매일매일 생각한다.

 

잘 하고 싶은 나.

뚜껑을 열어보면 ADHD로 인해 숭숭뚫린 구멍 투성인 내 삶.

그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있는 그대로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것은 알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 모습.. 그것 또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다.

 

오늘도 혼란스러운 ADHD의 인생을 걷고 있는 나.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나.

 

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고민과 고뇌의 날들은

언제 끝이 날까.

죽을 때 까지 평생 이 고민들은 계속되는 걸까.

언제 쯤 편해질 수 있을까.